작법

윌리엄 골드먼의 주장에 따르면 모든 이야기의 결말의 핵심은 관객이 원하는 것을 주되 관객이 기대치 못한 방식으로 주는 것이다. 매우 자극적인 원칙이 아닐 수 없다. 우선 관객이 원하는 게 무엇일까? 관객은 해피 엔딩을 원한다고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말하는 제작자들이 수두룩하다. 그들이 이렇게 말하는 건 기분 좋게 끝나는 영화가 우울하게 끝나는 영화보다 돈을 더 많이 벌기 때문이다.

 이건 불쾌한 경험을 줄 법한 영화는 절대 보러 가지 않는 소수의 관객들로 인한 현상이다. 대개 그들이 하는 변명이란, 사는 게 이미 충분히 비극적이라는 것이다.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이런 사람들은 영화 속의 부정적인 감정만 피하는 게 아니라 실제 생활에서도 마찬가지라는 게 드러난다. 그들은 괴로움이 아예 없는 게 행복이라고 생각하는 탓에 아무것도 깊이 느끼질 못한다. 사람이 느끼는 기쁨의 깊이는 그가 겪은 괴로움에 정비례한다. 대다수의 관객은 영화가 기분좋게 끝나든 우울하게 끝나든 상관하지 않는다. 관객이 원하는 것은 감정적인 만족이다. 다시 말해 절정이 자기 예상을 실현시켜 주길 기대하는 것이다. 어떤 특정한 감정을 주기로 단단히 약속해 놓고 주지 못하면 망하는 것이다. 그래서 작가는 관객에게 약속해 둔 경험을 전달해 주되 관객이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준다. 이것이 예술가와 아마추어의 차이다.


아리스토 텔레스의 말마따나 반드시 결말은 <필연적이고 예상 밖이어야> 한다. 발단 단게에서는 무엇이든 가능해 보이던 것이 절정에 이르러 관객이 이야기를 되돌아볼 때는 도저히 다른 경로로는 이야기가 전개되지 못했을 것처럼 보인다는 점에서 필연적이다. 인물들과 주변 세계에 대해 이해한 내용에 비추어봐서 절정이 필연적이고 만족스러워야 한다. 하지만 동시에 예상 밖이어야 한다. 관객이 예견하지 못했던 방식으로 일어나야 하는 것이다. 

해피 엔딩은 누구나 낼 수 있다. 인물들이 원하는 것을 모두 안겨주기만 하면 된다. 우울한 결말도 마찬가지이다. 그냥 모두 죽여버리면 된다. 하지만 예술가는 자기가 약속한 감정을 전달한다. 거기다 절정 안의 전환점이 될 때까지 주지 않고 참아오던 예상 밖의 통찰까지 와락 쏟아놓는다. 주인공이 즉석에서 고안해 내는 마지막 시도가 욕망을 실현할 수도 있고 못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간극에서 쏟아져 나오는 풍부한 통찰을 통해 관객은 바라던 감정을 뜻밖의 방식으로 얻게 된다.

 프랑수아 트뤼포가 말한 대로 훌륭한 결말의 비결은 <볼거리와 진실>의 조합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트뤼포가 말한 <볼거리>는 폭발 효과 같은 게 아니다. 귀가 아니라 눈을 의식해서 씌어진 절정이란 뜻이다. 그가 말한 <진실>이란 주제의식을 뜻한다. 그러니까 트뤼포가 당부하는 것은 영화의 핵심 이미지를 만들라는 것이다. 모든 의미와 감정이 축약된 하나의 이미지 말이다. 교향곡의 코다처럼, 최종 행동에 담긴 핵심 이미지는 앞의 모든 내용을 반영하고 되울림한다. 이야기와 너무나 잘 맞아떨어져서 이것을 떠올리면 전체 영화의 느낌이 한번에 살아나는 그런 이미지다.

로버트 맥키, <STORY>, 고영범_이승민, 민음인, 2015, 444~446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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